Spring Island
[딕슨] 전력 본문
비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오늘도 빗줄기는 끊어지지 않았고, 소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만 덩그러니 남아 눈물을 콸콸 흘리고 있는데, 참으로 가증스러워 욕만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며칠 째 푸른색이 잿빛으로 물들어선 햇살조차 내리쬐지 못한다. 사람들은 기록적인 폭우라 했다. 데미안도, 팀도, 순찰하고 난 뒤에 물에 젖은 울새 꼴로 돌아와 범죄가 거의 없을 지경의 날씨라 한숨을 씹어내었다. 딕 그레이슨은 도저히 웨인 저택을 나서, 제 도시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제이슨 소식은? 묻는 것도 힘이 빠진다. 뻔한 답을 듣는 것 또한 우중충한 하늘만큼 듣기 싫어, 팀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숨을 떨어뜨렸다. 걱정하지 마, 딕. 제이슨은 강한 아이야. 무사할 거야. 브루스의 뒤를 잇는 리틀 디텍티브가 말할 만한 가정은 아닌 것 같네. 비꼬는 거야? 농담한 거지. 웃기지도 않아.
하늘색 눈동자. 가장 어린 소년의 눈동자는 연한 푸른색. 브루스의 등 뒤로 숨어 멋쩍어하던 소년을 보고 데미안은 심술궂게 웃었다. 색이 조금 다르네, 아버지. 취향이 달라지셨나봐? 예의 없는 발언에 식겁해 팀은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지만 겁에 질려있던 소년은 자신감을 푹 잃어버리곤 시선을 바닥에 박아버렸더랬다. 딕은 아이의 이름이 궁금했다. 브루스가 데려오겠다 한 새 로빈, 새 동생에 대한 거리낌은 하늘색 눈동자와 마주친 후 허둥지둥 몸을 숨겼다.
이름이 뭐니?
소년은 발간 얼굴을 조금 들었다. 예쁜 눈이구나. 얇은 입술이 오물거렸다. 아, 배트카의 바퀴를 훔칠 정도면 충분히 대범할 텐데도. 하기사, 저보다 훨씬 큰 사내들 사이에 둘러싸여 모욕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시선을 받고 있으니. 배트맨의 망토를 꼭 쥔 손은 작았다.
제이슨 토드.
핏줄 비치는 얇은 손목, 헤진 바지 밑단이 가리지 못한 얇은 발목, 소년은 나이에 비해 너무 여렸고, 작았고, 눈동자는 부서질 것 같았다. 딕은 무릎을 접어 조그마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푹 파인 눈동자에 하늘이 선명하다. 심장이 저와 함께 내려앉았다. 쿵, 하고.
나는 딕 그레이슨이야, 제이. 잘 부탁할게?
뒤에서 데미안이 거칠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동생의 모욕에도 아랑곳 않고 손을 건네었다. 제이슨, 어린 제이슨이 망토를 놓고 작은 손을 커다란 손 위에 올려둔 순간부터, 제이슨 토드가 딕 그레이슨의 하늘이 되었음을 막연히 직감했다. 갈비뼈 사이가 간지러웠다. 처음 만난 소년은 가장 외로운 곳을 조심스레 긁어주기 시작했다.
입이 쓰다. 입술이 메마른다. 며칠 째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을 보니 마음까지 물을 먹어 무거워졌지만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깡마른 소년이 저 빗속을 헤매고 있다. 마음이 너무 아파 가슴을 쥐어짜다 설핏 잠이 들면 소년이 환한 웃음을 몰고 나와 어서 자신을 찾아보라 귀엽게 투정을 부렸다. 나의 하늘, 가까이 다가가면 뒤로 살금살금 물러서더니 배시시 웃어대었다. 못 찾을 거야, 너는. 내 생각을 하고 있어? 응, 응, 많이, 참 많이, 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꿈에서 깬 딕은 울었다. 소년 시절 이후 드물던 눈물이, 제이슨을 떠올리면 타오르다 재로 변해버렸다. 빗소리만 들리는 새벽녘의 자신이 약하고 한심해 뵈어 울음이 얼굴을, 손을, 마음을 모조리 적셨다. 나의 하늘, 내 세상, 도대체 어디에 있어,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 어떤 일이 생겨 우리의, 나의 곁에서 가볍게 사라진 거니. 너는 가벼이 떠났겠지만, 나는, 나는 죽을 것 같아, 제이. 하나만 물을게. 살아 있어? 하늘은 아직 푸르러?
제이슨은 종종 블러디헤이븐으로 찾아와 딕과 밤을 보냈다. 하루 종일 일과 범죄에 치여 살다 돌아온 그에게 제이슨은 브루스 몰래 왔다며 보고 싶었노라 속삭이고 그의 허리에 얇은 팔을 두르며 수다를, 주로 배트맨, 그리고 데미안에 관한 투정과 고담으로 자주 오지 않는 딕에 대한 작은 설움을 털어놓았다. 배트맨은 너무 강압적이야. 데미안은 매번 나를 모욕적으로 대해. 팀은 괜찮아. 어제 쿠키도 사주었는걸.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좋아. 브루스가 일을 하는 거 보는 게 재미있어. 그런데 딕은 어째서 고담으로 오지 않는 거야?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잖아. 그래? 형이 얼마나 보고 싶은데? 몰라, 세어보지도 못했어. 딕은 제이슨을 끌어안았다. 까만 정수리에 입을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맞추었다. 가슴에 묻은 아이의 향기와 숨을 끊임없이 들이쉬었다.
너는 내 하늘이야, 내 세상이야, 제이슨 토드.
딕은 제이슨이 그립다. 부서진 세상이라도 좋으니.
*
딕, 딕! 설핏 제이슨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멍한 시선을 돌리니 팀이 망연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래, 팀. 힘없는 입꼬리를 겨우 올렸으나 이내 축 늘어진다. 제이슨 소식이니? 물어볼 필요가 없었지만. 이미 동생의 모든 것이 단 하나만을 알려주고 있었으므로. 딕은 창밖을 보았다. 잿빛 하늘과 세상을 적신 비와 사라진 소년의 죽음, 그리고 창에 흐릿하게 비친 저의 뒤틀린 얼굴까지.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 부서졌다. 아이의 하늘색 눈동자는, 지금의 하늘보다 어두운 잿빛으로 칠해진 채로. 무너진 하늘을 끌어안아 체취를 들이쉬고 상처에 키스하고 목구멍에 숨을 불어넣었다. 정신없이. 아득한 정신의 끝에서, 햇살 담은 웃음이 눈을 가득 채웠다. 브루스가, 데미안이, 팀이 각자의 자책감에 머물러 있을 때에, 그들의 앞에서, 딕 그레이슨은 울었다.
*
레드후드라고, 새로운 놈인데, 마약을 밀매하고 여러 조직을 털면서 세력을 확장해나간다고 하더군. 고담을 넘어 블러드헤이븐까지 갈 기세던데, 도와주지 않겠어, 그레이슨? 으흠, 나야 당연하지. 천하에 데미안조차 잡지 못하다니. 대단한 걸? 드레이크도 골머리를 앓고 있어. 조금 희한한 녀석이야. 우리의 방법을 잘 아는 듯 해. 내일 오후 11시 25분, 레드후드와 갱단들이 마약을 거래한다는 장소를 알아냈으니 그 쪽에서 만나도록 하지. 그나저나 상태는 양호해 보이네. 음, 아마 그럴 거야, 데미안.
비가 내린다.
오늘도 빗줄기는 끊어지지 않았고, 소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만 덩그러니 남아 눈물을 콸콸 흘리고 있는데, 참으로 가증스러워 욕만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며칠 째 푸른색이 잿빛으로 물들어선 햇살조차 내리쬐지 못한다. 사람들은 기록적인 폭우라 했다. 데미안도, 팀도, 순찰하고 난 뒤에 물에 젖은 울새 꼴로 돌아와 범죄가 거의 없을 지경의 날씨라 한숨을 씹어내었다. 딕 그레이슨은 도저히 웨인 저택을 나서, 제 도시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제이슨 소식은? 묻는 것도 힘이 빠진다. 뻔한 답을 듣는 것 또한 우중충한 하늘만큼 듣기 싫어, 팀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숨을 떨어뜨렸다. 걱정하지 마, 딕. 제이슨은 강한 아이야. 무사할 거야. 브루스의 뒤를 잇는 리틀 디텍티브가 말할 만한 가정은 아닌 것 같네. 비꼬는 거야? 농담한 거지. 웃기지도 않아.
하늘색 눈동자. 가장 어린 소년의 눈동자는 연한 푸른색. 브루스의 등 뒤로 숨어 멋쩍어하던 소년을 보고 데미안은 심술궂게 웃었다. 색이 조금 다르네, 아버지. 취향이 달라지셨나봐? 예의 없는 발언에 식겁해 팀은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지만 겁에 질려있던 소년은 자신감을 푹 잃어버리곤 시선을 바닥에 박아버렸더랬다. 딕은 아이의 이름이 궁금했다. 브루스가 데려오겠다 한 새 로빈, 새 동생에 대한 거리낌은 하늘색 눈동자와 마주친 후 허둥지둥 몸을 숨겼다.
이름이 뭐니?
소년은 발간 얼굴을 조금 들었다. 예쁜 눈이구나. 얇은 입술이 오물거렸다. 아, 배트카의 바퀴를 훔칠 정도면 충분히 대범할 텐데도. 하기사, 저보다 훨씬 큰 사내들 사이에 둘러싸여 모욕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시선을 받고 있으니. 배트맨의 망토를 꼭 쥔 손은 작았다.
제이슨 토드.
핏줄 비치는 얇은 손목, 헤진 바지 밑단이 가리지 못한 얇은 발목, 소년은 나이에 비해 너무 여렸고, 작았고, 눈동자는 부서질 것 같았다. 딕은 무릎을 접어 조그마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푹 파인 눈동자에 하늘이 선명하다. 심장이 저와 함께 내려앉았다. 쿵, 하고.
나는 딕 그레이슨이야, 제이. 잘 부탁할게?
뒤에서 데미안이 거칠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동생의 모욕에도 아랑곳 않고 손을 건네었다. 제이슨, 어린 제이슨이 망토를 놓고 작은 손을 커다란 손 위에 올려둔 순간부터, 제이슨 토드가 딕 그레이슨의 하늘이 되었음을 막연히 직감했다. 갈비뼈 사이가 간지러웠다. 처음 만난 소년은 가장 외로운 곳을 조심스레 긁어주기 시작했다.
입이 쓰다. 입술이 메마른다. 며칠 째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을 보니 마음까지 물을 먹어 무거워졌지만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깡마른 소년이 저 빗속을 헤매고 있다. 마음이 너무 아파 가슴을 쥐어짜다 설핏 잠이 들면 소년이 환한 웃음을 몰고 나와 어서 자신을 찾아보라 귀엽게 투정을 부렸다. 나의 하늘, 가까이 다가가면 뒤로 살금살금 물러서더니 배시시 웃어대었다. 못 찾을 거야, 너는. 내 생각을 하고 있어? 응, 응, 많이, 참 많이, 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꿈에서 깬 딕은 울었다. 소년 시절 이후 드물던 눈물이, 제이슨을 떠올리면 타오르다 재로 변해버렸다. 빗소리만 들리는 새벽녘의 자신이 약하고 한심해 뵈어 울음이 얼굴을, 손을, 마음을 모조리 적셨다. 나의 하늘, 내 세상, 도대체 어디에 있어,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 어떤 일이 생겨 우리의, 나의 곁에서 가볍게 사라진 거니. 너는 가벼이 떠났겠지만, 나는, 나는 죽을 것 같아, 제이. 하나만 물을게. 살아 있어? 하늘은 아직 푸르러?
제이슨은 종종 블러디헤이븐으로 찾아와 딕과 밤을 보냈다. 하루 종일 일과 범죄에 치여 살다 돌아온 그에게 제이슨은 브루스 몰래 왔다며 보고 싶었노라 속삭이고 그의 허리에 얇은 팔을 두르며 수다를, 주로 배트맨, 그리고 데미안에 관한 투정과 고담으로 자주 오지 않는 딕에 대한 작은 설움을 털어놓았다. 배트맨은 너무 강압적이야. 데미안은 매번 나를 모욕적으로 대해. 팀은 괜찮아. 어제 쿠키도 사주었는걸.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좋아. 브루스가 일을 하는 거 보는 게 재미있어. 그런데 딕은 어째서 고담으로 오지 않는 거야?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잖아. 그래? 형이 얼마나 보고 싶은데? 몰라, 세어보지도 못했어. 딕은 제이슨을 끌어안았다. 까만 정수리에 입을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맞추었다. 가슴에 묻은 아이의 향기와 숨을 끊임없이 들이쉬었다.
너는 내 하늘이야, 내 세상이야, 제이슨 토드.
딕은 제이슨이 그립다. 부서진 세상이라도 좋으니.
*
딕, 딕! 설핏 제이슨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멍한 시선을 돌리니 팀이 망연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래, 팀. 힘없는 입꼬리를 겨우 올렸으나 이내 축 늘어진다. 제이슨 소식이니? 물어볼 필요가 없었지만. 이미 동생의 모든 것이 단 하나만을 알려주고 있었으므로. 딕은 창밖을 보았다. 잿빛 하늘과 세상을 적신 비와 사라진 소년의 죽음, 그리고 창에 흐릿하게 비친 저의 뒤틀린 얼굴까지.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 부서졌다. 아이의 하늘색 눈동자는, 지금의 하늘보다 어두운 잿빛으로 칠해진 채로. 무너진 하늘을 끌어안아 체취를 들이쉬고 상처에 키스하고 목구멍에 숨을 불어넣었다. 정신없이. 아득한 정신의 끝에서, 햇살 담은 웃음이 눈을 가득 채웠다. 브루스가, 데미안이, 팀이 각자의 자책감에 머물러 있을 때에, 그들의 앞에서, 딕 그레이슨은 울었다.
*
레드후드라고, 새로운 놈인데, 마약을 밀매하고 여러 조직을 털면서 세력을 확장해나간다고 하더군. 고담을 넘어 블러드헤이븐까지 갈 기세던데, 도와주지 않겠어, 그레이슨? 으흠, 나야 당연하지. 천하에 데미안조차 잡지 못하다니. 대단한 걸? 드레이크도 골머리를 앓고 있어. 조금 희한한 녀석이야. 우리의 방법을 잘 아는 듯 해. 내일 오후 11시 25분, 레드후드와 갱단들이 마약을 거래한다는 장소를 알아냈으니 그 쪽에서 만나도록 하지. 그나저나 상태는 양호해 보이네. 음, 아마 그럴 거야, 데미안.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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